iPhone 5 Website Leaked
독일에서 유출된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진짜같진 않지만 그래도 엄청 잘 만들었네요~ㅋㅋ
Just another WordPress site
독일에서 유출된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진짜같진 않지만 그래도 엄청 잘 만들었네요~ㅋㅋ
트위터(twitter)가 한 동안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더니 요즘은 페이스북(facebook)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구미권에 비해서는 한참 늦게 한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지만 계속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어 발전성이 많은 웹서비스들이다. 또한 이들 서비스가 주목들 끌면서 소셜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다.
많은 국내 미디어들이 이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열광하고 있지만 국내환경에 이러한 서비스가 완전히 적응할 지는 아직도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중들이 평소에 늘 접하던 익숙한 방식이 아니고 국내 문화에 잘 접목된 게시판, 카페와 같은 소규모 폐쇄적 네트워크에 적응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인상을 심어줄지 아직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모바일과의 강력한 결합과 호환성을 자랑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맞물려 여전히 그 잠재력과 폭발력은 예측 불가라 할 수 있다.
아무튼
페이스북의 국내 성공 여부를 떠나 소셜네트워크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뭔가 어색하고 복잡한 페이스북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몇 가지 관련 링크들을 모아 본다.

2010년 1월 한국과 미국의 중보자들이 이스라엘에서 모여 그 거룩한 땅과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였다. 이 기도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트윈드 중보팀을 뉴욕에 보내셨다. 4월에 뉴욕의 맨하튼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거부하는 미국 유대인을 붙잡고 있는 바벨론의 영을 향하여 “내 백성을 가게하라”고 선포하였다.
뉴욕 여정 후에 감독님은 교회가 오랫동안 유대인을 학살하고 핍박했던 죄를 회개하고 이스라엘회복을 위한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첫 인터뷰 상대는 “내 손에 피가 묻었나이다”의 저자인 메시아닉 유대인인 마이클 브라운 박사였다. 인터뷰를 위해서 그의 스케줄을 살펴보니 TOS라는 처음 들어보는 독일 교회에서 6월 24일-27일까지 “Glory and Passion”라는 제목으로 컨퍼런스를 하는데 브라운 박사가 주강사로 되어있었다 (www.tos.info).
감독님은 원래 우크라이나에 갈 계획이어서 촬영하는 세준씨만 독일에 보내서 마이클 브라운을 인터뷰하려고 했었다. 어느 날 사무실에 기도하러 왔다가 독일에 간 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즉각적으로 독일에 같이 가서 기도하겠다고 하고, 감독님도 우크라이나 갔다 꼭 독일에 와서 반유대주의의 견고한 진을 끊는 기도를 같이 해야 된다고 난리(?)를 폈다. 갑작스런 나의 바람잡이 때문에 감독님도 가기로 했는데 그 후 예상치 않게 우크라이나 여정은 현지 사정 때문에 길이 막히고 독일 여정을 처음부터 같이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4월 뉴욕에 기도하러 갔다 온 이후로 올해 들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유대주의 견고한 진을 끊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일단 독일에 가겠다고 결정한 후 많은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께서는 독일 땅에 예비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영상을 찍으며 반유대주의 영적 근원을 깨닫게 된다는 확답을 주셨다. 그리하여 감독님과 저, 촬영하는 세준씨, 사진 작가 요셉씨 총 4명이 7박 8일의 독일 여정으로 6월 21일에 프랑크프루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막상 독일에 촬영을 가려는데 4명 중에 아무도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전에 독일을 방문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할 지 난감하였다. 감독님이 가끔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 받는 독일에 있는 조나단 강박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며칠 후 본인이 8일 동안 휴가를 받아서 올 때부터 갈 때까지 모든 여정을 가이드 해 주겠다는 응답이 왔다. 강박사는 U선교회 소속으로 부부가 평신도 선교사로 현재 독일 쾰른에 있는 교회를 섬기고 있는 신실하신 분이다. 이 분은 작년에 감독님의 “하늘의 언어”를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작년 여름에 휴가를 받아 국내에 와서 감독님을 통해서 방언을 받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강박사가 렌트한 소형벤을 타고 프랑크프루트 공항으로부터 아우토반을 타고 쾰른에 있는 숙소에 오게 되었다. 첫날은 교회 숙소에서 자게 되었는데 이곳 쾰른 교회를 세운 아브라함 리 선교사님 내외분과 좋은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7박 8일 동안 강박사님이 운전한 거리가 3800km나 되었는데 다행히도 강박사님은 드라이브를 무척이나 즐기시는 분이셨고 아우토반은 속도 제한이 없기 때문에 오고 가는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차안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최고 속력이 200km/h이었는데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속도를 맛보았다.
<강박사님의 운전 사진: 계기판의 속도 200km/h >둘째날 여정: 쾰른 + 여섯째날 여정: 트리어
<쾰른 대성당 모습>
<세밀한 조각들이 쾰른 대성당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보여준다>다음날 쾰른 지역을 촬영하는데 쾰른 대성당이 촬영 대상 1순위였다. 독일에 오기 전에 감독님이 예전에 언급했던 릭 조이너의 “마귀의 책략과 교회의 승리(Overcoming the Accuser)”라는 소책자의 내용을 주목하였다.
“어둠의 세력들은 지옥의 문을 통하여 이 세상에 도달한 후 세상 사람들을 공격한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표방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도우심은 천국 문을 통하여 이 세상에 도달한다. (중략)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한 도시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나라와 지역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중략) 지역을 영적으로 분별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좋은 실례를 들어보자. 독일에 쾰른(Cologne)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이 세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는 그 어느 도시들보다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도시이다. (중략) 이 쾰른이라는 도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신학과 철학들을 발표한 사람들이 흑암의 세력에게 장악되어 왕성하게 활동하였었던 도시이다”
릭 조이너의 책과 다른 자료를 참조하여 대략적으로 쾰른과 관련된 영적 조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쾰른이라는 지역은 BC 39년에 로마에 의해서 세워진 곳이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트스(Augustus)의 조카 딸 중에 일반적으로 사랑의 여신으로 알려진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딸인 아그리파나 시니어(Agrippina senior)가 정복자 게르마니쿠스(Germanicus)와 AD 15년에 쾰른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AD 16년에 우상 숭배장소였던 쾰른 지역 Oppidum-Ubiorum에서 아그리피나 주니어(Agrippian Jr.)를 출산하게 된다. 아그리피나 주니어는 AD 37년에 아들을 출산하는데 그가 바로 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잔인하게 기독교인을 핍박한 네로 황제이다. AD 67년에 쾰른은 서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우상들이 섬기는 신전들이 많이 생겨났다.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하고 마테르누스라는 사람을 쾰른, 트리어, 통커른 지역을 관장하는 감독으로 파송한다. 그는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우상과 신전을 없애도록 지시를 받지만 이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교도 신전들이 기독교 교회당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영적인 아간의 죄, 우상과 신전을 파괴하지 않고 남긴 대가로 쾰른이라는 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반기를 들고 하나님의 백성을 멸절하는 반유대주의, 반기독교의 산실이 된다.
638년 로마의 관할 하에 있던 예루살렘이 모슬렘에 의해 점령 당하자 십자군 운동이 일어난다. 아미엔스 피터(Peter of Amiens)는 1096년 3월 부활절 전날에 트리어(Trier)에 도착하고 부활절날 만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쾰른을 점령한다. 그는 쾰른을 중심으로 십자군을 계속 모집하여 그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들어가는 비용을 유대인들의 재산을 빼앗아서 충당한다. 이런 중에 쾰른을 포함한 거대한 지역을 다스리는 고트프리드 군주가 자신의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살해하라는 칙령을 내리게 되면서 피터의 십자군 군대에 의한 대규모의 유대인 학살이 시작된다.
1096년 4월 피터의 1차 십자군 군대가 쾰른을 출발하여 콘스탄티노플 향하면서 여정 중에 있는유대인 거주지를 파괴하고 유대인을 학살한다. 1099년 7월 15일에 예루살렘이 십자군에 의해서 함락되는데 항복한 모슬렘은 물론 여기에 사는 선량한 유대인들을 처참하게 학살한다.
쾰른은 반유대주의 역사는 십자군에서 끝나지 않는다. 1164년에 황제가 쾰른의 대주교에게 3명의현인들의 유골을 주게 되는데 1181년에 이 3명의 현인들의 유골을 담기 위한 금상자가 만들어지고 그 이후로 순례자들이 이 유골을 경배하기 위해서 쾰른을 찾아온다.
<쾰른 대성당안 3인의 현인의 유골을 담은 금상자>그리하여 1248년 8월 15일에 유골의 금상자가 있는 자리에 쾰른 대성당 공사가 시작된다. 공사를 시작한 지 300년 지난 1560년 어느 날 공사가 갑자기 중단된다. 그 이유는 공사 감독이 사탄과 맺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그 계약은 쾰른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에 트리어(Trier)라는 도시로부터 쾰른까지 수로를 만들어서 물을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탄은 자신의 권좌가 있는 트리어로부터 악한 영적 근원이 쾰른이라는 곳으로 전해지도록 함으로써 쾰른을 악의 도시가 되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 수로가 실제로 건설되었고 (강박사님이 독일어 자료를 찾아서 이 수로가 실제로 건설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죽음의 강이 쾰른으로 흘러 들어왔고 20세기 1억명이 넘는 인간들이 죽는 근원을 제공한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이다.
<1922년에 발행된 독일 화폐 뒷면과 앞면: 화폐의 뒷면(윗그림)에는 쾰른 대성당 총감독이 사탄과 계약을 맺는 그림이 그려있다. 그 그림 상단에는 “쾰른 시를 위한 긴급화폐”라는 글이 적혀있고 그림 하단에는 “대성전(dome) 감독과 사탄”이라고 적혀있다>
<쾰른 대성당 근처에서 발견된 수로 유적>
<쾰른 대성당 근처 파괴된 유대인 회당 발굴터>1842년에 중단되었던 쾰른 대성당 공사가 300년 만에 재개된다. 놀라운 것은 유대인인 칼 막스는 수로의 근원지인 트리어에서 1818년에 출생하였고 수로가 완성돼서 대성당 공사가 재개된 바로 그 해에 트리어에서 쾰른으로 거처를 옮기고 공산당 활동을 시작하였고 1848년 쾰른에서 공산당 선언문을 발표한다.
십자군 군대를 일으킨 피터가 쾰른에서 십자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트리어에 갔었고 막스는 트리어에서 태어나서 사탄과 약조된 트리어-쾰른 수로를 타고 공산주의 운동을 쾰른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면 트리어란 어떤 도시일까? 촬영을 하면서 예정에 없던 트리어란 도시를 가야 된다는 마음을 주셔서 트리어를 찾아갔다.
공산주의자들의 성지인 칼 막스 생가와 파괴된 유대인 회당을 찾아갔다. 성령님이 계속적인 마음을 주셔서 떠나기 전날 주일 예배 후에 강박사를 포함한 5명 모두가 열심히 인터넷으로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강박사는 IT회사에 근무하고 있어서 그의 집의 인터넷 환경이 무척 좋았다. 5명이 열심히 자료를 찾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트리어는 BC 2000년경 앗시리아(앗수르) 왕인 니누스(Ninus)의 아들인 트레베타(Trebeta)가 세운 도시로서 니누스가 새부인 세미라미스(Semiramis)와 결혼하고 니누스가 죽자 세미라미스가 앗시리아를 지배하게 되고 전처의 아들 트레베타를 내쫓아서 그가 유럽 지역으로 와서 트리어를 세운다. BC15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곳에 로마의 도시를 건설하며 815년에 대주교 관구가 된다. 그런데 자료를 찾으면서 역사학자들이 니누스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니므롯(Nimrod)과 동일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Ninus). 니므롯은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인물로서 전쟁에 능한 용사이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창 10:8-12)
니므롯은 바벨탑을 쌓은 바벨(바벨론)과 앗수르를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진멸하려는 악한 세력의 근원이 된다. 니므롯의 아들이 유럽으로 넘어와서 트리어 도시를 세웠다는 것은 니므롯의 반유대주의 근원이 트리어를 통해서 이어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십자군 전쟁과 유대인 학살 그리고 반유대주의/반기독교인 공산주의,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이 이 전쟁의 용사인 니므롯과 관련되어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트리어에 있는 칼 막스 생가와 박물관>
<파괴된 트리어의 옛유대 회당 자리에 있는 추모비>또한 영적으로 바벨론 종교에서 바알(Baal) 벨(Bel), 벨루스(Belus)은 모두다 니므롯을 신으로 섬겼으며 벨티스(Beltis)는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를 상징한다. 솔로몬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지는데 북이스라엘 10개 족속은 200년 동안 바알 신을 섬기게 되고 마침내 BC 721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가게된다.
알렉산더 히슬랍(Aiexander Hislop)에 따르면 모든 ‘어머니 여신(성모)’의 기원은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Semiramis)로 귀착된다. 난잡한 세미라미스가 니므롯이 죽은 뒤 임신하게 되는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으로 그녀는 태양의 빛 줄기에 의해 처녀잉태를 했다고 주장했다. 사내애가 태어나자, 그녀는 사람들에게 니므롯이 환생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하여 어머니 여신이 동일인의 아내임과 동시에 어머니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녀는 그 아이를 구세주로, 자신을 성모(聖母)로 신격화했다. 이는 많은 종교들의 어머니-어린아이 신들의 기원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이집트에서 어머니와 어린아이는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Osiris)의 이름으로 숭배된다. 인도(India)에서는 심지어 오늘날까지 이시(Isi)와 이스와라(Iswara)로, 아시아에서는 시벨레(Cybele)와 데오이우스(Deoius)로, 로마에서는 훠튜나(Fortuna)와 쥬피터-퓨어(Jupiter-puer) 또는 소년 쥬피터(Jupiter)로, 그리스에서는 가슴에 아기를 안은 위대한 어머니 세레스(Ceres) 또는 소년 플루투스(Plutus)를 손에 잡고있는 평화의 여신 아이렌느(Irene)로, 심지어 티벳, 중국, 일본에서는 신성한 어머니 싱무(Shing Moo:聖母)는 팔에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대표된다. 날개 달린 소년 신인 비너스의 아들 큐핏(Cupid), 자유의 여신 훼로니아(Feronia)와 그녀의 젊은 아들 쥬피터(Jupiter) 등도 이에 해당된다. 가톨릭의 성모마리아 숭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고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여하튼 이번 독일 여정의 첫 방문지인 쾰른이 트리어하고 연결되면서 이런 영적 비밀들이 숨어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강박사님이 속해있는 U선교회가 유럽에 첫 번째 교회를 세운 곳이 바로 독일 쾰른 지역이다. 독일에 대해서 아무런 연고도 없던 우리팀이 릭 조이너의 소책자와 쾰른에 있는 강박사님과 연결되었다. 택하신 백성인 유대인을 멸절시켜서 하나님 언약의 성취를 방해하는 반유대주의의 영적 근원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여정을 계획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해 들어서 이스라엘을 향한 전세계의 비난과 분노의 수위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반유대주의 근원에도 동일한 영적 흐름이 지배하고 있다.
나머지 독일 여정에 대한 것은 다음 글로…
-현지 코디네이터: 조나단 강
-사진: 이요셉, 이승엽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모바일 기기들이 쏟아지면서 통신사들은 이 기기를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원활한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분주하다. LTE나 와이파이, 와이브로 등에 대한 투자도 늘리면서 그 밑단에 필요한 전송 장비들에 대한 투자도 늘려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SK텔레콤이 무선 데이터 네트워크 강화를 이해 한국알카텔-루슨트의 장비를 도입해 모바일 백홀망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모바일 백홀망이란 휴대폰의 신호를 받는 기지국에서 이런 기지국들의 정보가 한 곳에 집중되는 중앙 센터간 유선 구간을 말한다. 그동안 2Mbps 정도의 E1의 광장비들을 도입해 사용했던 대도시와 중소 도시들의 유선 네트워크 망을 꾸렸던 SK텔레콤은 와이파이와 와이브로 등 이더넷 밴드위스에 대한 요구 사항이 늘어나고 있어 이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새롭게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번 모바일 백홀망 구축이 대용량 트래픽 처리와 QoS(Quality of Service) 기반 서비스 제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알카텔-루슨트의 패킷 전송 솔루션(PTS)인 1850TSS(Transport Service Switch)와 네트워크 관리 시스템 1350OMS(Optical Management Suite)의 도입으로 SK텔레콤은 와이파이와 와이브로 서비스의 데이터 트래픽 전송을 위한 전국 규모의 전용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현재의 WCDMA 트래픽 수용은 물론, 향후 LTE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을 갖추게 된다.
한국 알카텔-루슨트 신원열 사장은 “오랜 기간 국내 광전송 및 무선 네트워크 솔루션 시장에서의 차별화된 리더십을 기반으로 통신사업자들이 LTE 시대를 순조롭게 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며, “트래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전송해 고부가가치서비스를 제공하게 해주는 통합 인프라를 구축하는 하이 레버리지 네트워크(High Leverage NetworkTM) 전략을 구현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공급되는 알카텔-루슨트 1850TSS는 서킷 스위칭과 패킷 전송을 모두 지원하는 차세대 패킷 광전송(Packet Optical Transport) 솔루션으로, T-MPLS/MPLS-TP 표준을 지원하며, 음성 및 데이터, 2G/3G 무선 네트워크는 물론 향후 LTE 기반의 4G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하게 해준다.
1850TSS는 SK텔레콤 외에도 BT, 차이나모바일, NTT DoCoMo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통신사업자들에게 모바일 백홀 솔루션으로 공급되었다.
통상적으로 십대들이 교회를 가지 않는 이유를 너무 바빠서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너무 바빠서 교회에 갈 수 없는 사람은 사실 없다. 바빠서가 아닌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그들을 잃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십대들은 하나님께서도 교회에 나타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도 교회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Teens don’t show up because they don’t think God is showing up.) 본질을 잃은 청소년 그룹이 아무리 여러 가지의 활동을 한다고 해도 그들이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에 그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다.
2. 십대들은 그들의 부모가 교회를 우선시 하지 않기에 그들도 교회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Teens don’t make church a priority because their parents don’t make it a priority.) 부모들이 교회를 세상의 다른 일들보다 중요시 하지 않는데, 그 자녀들이 교회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스포츠 게임이나 공부에는 집중하라고 하면서 교회로 인도하지 않는 부모들에게 친구가 되려고 하지 말고 진정한 부모가 되어 주라고 충고하고 있다.
3. 자기들끼리 연결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기에 십대들은 더는 교회를 의존할 필요가 없다. (Teens are very connected to each other now and don’t need church to hook up anymore.) 핸드폰이나 인터넷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요즘, 그들은 교회에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나올 이유가 없다. 교회보다 더 친근함을 느낄 수 있고 더 나은 공동체가 될 수 있는 매체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4.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특별히 교회에 다니는 이들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Unchurched teens see no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church kids and everyone else.)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점이 보이지 않기에 그들은 교회에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교회에 다니면 삶이 변하고 세상과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5. 작은 것들을 중요시하면서 관계성이 없는 일들에 열심인 교회들에 많은 십대들이 질려있다. (Many teens get impatient with churches that major on the minors and try too hard to seem relevant.) 요즘 유행하는 십대들의 우상이나 드라마, 패션을 언급하거나 설교에 이용하는 것만으로 십대들을 이해하거나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은 채 그저 방법으로만 사용되는 것들에 아이들은 질려 한다. 나중에 기억도 하지 못할 한 때의 유행이 마치 교회의 본질인 것처럼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교회는 이들을 잃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Faith Experience에 Shane Raynor가 기재한 내용을 간추린 내용이다.
기사출처: Shane Raynor, Faith Experience
옮긴이: 김영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4년 전 Daum 카페를 예로 든 적이 있다.
왜 그들은 우측 클릭을 막고 컨텐츠를 복사하지 못하게 하는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글 임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우측 클릭엔 다양한 기능이 있다. 굳이 복사에만 이용되는 것도 아니다.
전체 공개된 글을 우측 클릭만 막는다고 무단 복제가 방지되는 것도 아니다. 그야 말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격이다.
카페 가입해서 글을 읽으려면 세 번을 방문하고 세 번 글을 적어야 한다. 갓 가입한 카페에 적을만한 글이 있을리 없다. 대부분 쓸데 없는 글로 횟수를 채운다. 그렇게 하고서 정회원이 되어본들 카페에 유용한 글이 있을리 없다. 권한 문제로 제대로 검색조차 되질 않으니 동일한 질문이 반복해서 올라오고 비공개 글이 많다 보니 독자 수도 현저히 적어 수준 높은 컨텐츠가 올라오기 힘들다.
카페 비공개, 개인적인 정말 개인적인 단순 친목모임이라면 이해한다. 하지만 정보성 카페들이 왜 비공개를 택하고, 검색을 막고, 정회원을 요구하고, 마우스 우측 클릭을 막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공개할 수록 검색에 더 잘 노출되고 카페 가입자가 더욱 늘텐데 참으로 근시안적인 선택이다.
좀 비약하자면,
우리나라 재벌들이 탈세하려고 애쓰는 것에 반해 빌 게이츠, 워렌 버핏등 미국의 최고 부자들이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그런 문화의 차이와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는 문화의 문제요. 미성숙한 시민 의식의 문제다.
“웹은 죽었다”.
‘인터넷에서 작은 수요들이 합쳐 큰 시장을 이루고’, 그것이 아마존 등 소위 웹 2.0 기업의 성공을 도왔다는 ‘롱테일’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 그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와이어드’에 지난 8월 17일 위와 같은 도발적 제목의 글을 실었다. 해당 글은 그 제목의 선정성 만큼이나 발표되자 마자 미국 언론계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국내 언론도 이를 소개한 바 있다.
웹이 죽었다는 근거는 1990년대 들어 웹 브라우저 붐을 타고 급상승하던 웹의 트래픽이 200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해 2010년에는 약 23%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이 이제는 모바일, 태블릿 PC 혁명으로 성장한 ‘앱’ 뿐만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등이 구축하고 있는 자체 콘텐츠 소비 플랫폼에게 인터넷에서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웹’에 대한 ‘앱’의 위협에 앞서 구글, 페이스북 등의 자체 콘텐츠 소비 플랫폼의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주장의 배경은 근거리 통신망인 이더넷을 발명한 밥 멧칼프의 ‘멧칼프의 법칙’ 때문이다. 이 법칙은 ‘네트워크의 효용성은 이용자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데, 이 틀에서 보면 네트워크 경제에서 ‘규모의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이용자 수가 2배 많다는 것은, 2배가 아니라 4배 더 가치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구글이 ‘개방’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오픈’을 독점해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 그리고 그 구글의 최대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5억 이용자가 갖는 진정한 위력이 무엇인지 이해가 된다.
물론, 여기서 ‘왕의 귀환’에 성공한 스티브 잡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 PC 대전에서 MS와 IBM의 공동 전선에 밀려 할리우드로 유배당했던 잡스는 그 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의 남과 북,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를 융합할 수 있는 지혜를 축적했다. 그 내공으로 선보인 것이 전설의 ‘아이’시리즈의 선두를 차지한 ‘아이팟’이었다.
그러나 아이팟으로 MP3 시장을 석권한 신화의 근본은 ‘아이튠즈’에 있었다. 미디어 산업계는 냅스터(Napster), 카자(Kazza) 등 P2P 파일공유 사이트들과의 전쟁에 힘이 빠졌고, 공짜이긴 하지만 질이 떨어지는 자료들 사이를 뒤지고 다녀야 하는 P2P 소비자들이 지쳤다는 것을 잡스가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그 사이에서 정보재 거래를 위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균형점’을 ‘아이튠즈’로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튠즈’ 모델은, 아이폰의 ‘앱스토어’ 모델을 통해서 음반 시장을 넘어 통신 시장으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아이패드’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출판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마찰없는 경제’인 인터넷의 폭팔적 잠재력은 누구나 가늠하고 있었지만, 그 것이 어떻게 기존 산업계를 뒤엎을 ‘파괴적 혁신’으로 등장할 지는 누구도 쉽게 그 답을 내놓지 못했는 데, 그 답을 돌아온 황태자 스티브 잡스가 제시한 것이다.
콘텐츠 공급자에게 던지는 잡스의 충고는 이것이다. “수익성을 원한다면, 이제는 웹을 버리고 앱으로 오라.”
사실 그 선택이 매력적인 것은 이용자도 사실이다.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더 안전하게, 원하는 기능과 서비스가 충족될 수 있다면, 굳이 앱이 아니라 웹을 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웹’이냐 ‘앱’이냐가 아니라 ‘더 큰 효용’이기 때문이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함께 손을 잡고 추는 춤이니, 웹에서 앱으로의 역사적 이동은 환영할 만한 일인 것 같다. 그러나 먼저 이 이동이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첫째, 앤더슨이 “웹은 죽었다”고 선포한 당일 반박문을 기고한 뉴욕타임즈의 닉 빌톤도 지적한 것처럼, 앤더슨은 통계 자료를 잘못 해석했다. 인터넷 트래픽에서 웹의 비중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그 동안 인터넷 전체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 ‘이용 행태’도 획기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즉, 인터넷 상 웹의 이용 ‘비율’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동안 웹의 절대 ‘사용량’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용 형태’면에서 볼 때, 잡스가 아이튠즈, 앱스토어 모델을 통해 온라인 정보재 거래의 새로운 경제적 균형점을 만들어 준 덕분으로 P2P에 대한 이용 비율이 감소하긴 하지만, 대신 ‘비디오 이용률’이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용자들이 웹보다 앱을 더 이용함에 따라 웹의 영향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앤더슨의 주장에서 맹점을 찾을 수 있다.
그 맹점을 찾기 위해 먼저 이 비디오 콘텐츠 증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 앤더슨이 해당 글에서 주요 논거로 사용했던 멧칼프 이론의 창시자 밥 멧칼프는 비디오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것을 다음 세기 인터넷의 가장 주요한 변화로 주목한 바 있다.
그 이유는 간명하다. 주로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 공유를 목적으로 하던 인터넷이 기술 혁신에 힘입어 음성을 넘어 이제 비디오를 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터넷은 기존의 방송, 음반, 출판 등 콘텐츠 유통망을 모두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부각되고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출판시장이나 TV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같은 IT와 미디어, 그리고 문화산업을 통합할 인터넷의 잠재성 때문이다.
앤더슨은 또 IT와 미디어, 그리고 문화산업 통합이라는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서 과거 미디어 산업의 공룡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현재 주요한 플랫폼을 쥐고 있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도 동일한 ‘독점적 형태’를 보일 것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이 ‘독점적 형태’를 보임에 따라 인터넷은 ‘웹’의 천하통일이 무너지고, 수 개의 플랫폼으로 분할되어 통치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이용자 수에 따라 네트워크의 효용성이 제곱으로 증가한다는 맷칼프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초기 인터넷 제왕이었던 야후 이래 인터넷은 수없이 그 승자를 갈아치워온 날카로운 경쟁의 무대였다. 애플을 제외한 구글, 페이스북 등은 다 인터넷의 새로운 강자들이다. 잡스 이후의 애플, 그리고 지난 5년 동안 위협적인 서비스를 내놓지 못한 구글, 끓임없이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페이스북 역시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전통적인 미디어 산업의 공룡들은 ‘콘텐츠’ 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었는 데, 그 플랫폼의 ‘성격’이 다르다. 예컨대, 방송망, 전화망 등은 가입자가 쉽게 이탈할 수 없는 ‘물리적’ 환경이다. 그리고 초기에 그 같은 ‘망’ 구축에 상당한 비용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자본금이 빈약한 신생기업이 덤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구글,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 기반이 되는 인터넷은 다르다. 인터넷 위에 또 다른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용자들을 강력하게 구속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권력전쟁>(Who Controls the Internet)의 저자이자 콜롬비아 로스쿨 교수인 팀 우가 지적한 것처럼, 인터넷은 초기 인터넷 아버지들의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에 따라서 ‘모든 콘텐츠를 동일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에 수 억의 이용자를 보유한 온라인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다른 인터넷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본질적인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둘째, <인터넷의 미래 그리고 어떻게 그 것을 멈출 것인가>(The Future of the Internent and How to Stop It)의 저자이자 하버드 로스쿨 교수인 조나단 지트레인이 지적한 것처럼, PC가 인터넷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인터넷은 과거 미디어의 행태를 답습하기는 어렵다. PC는 일반적 목적(general purpose)에 따른 ‘열린 창조성’(generativity)을 가진 기계이기 때문이다. 즉,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PC는 제품 설계자가 설계한 목적 이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킬러 어플리케이션이었던 이메일을 비롯해 웹 등 수많은 기술적, 사회적 혁신이 나올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 PC 기반의 인터넷 생태계가 보존되는 한, 인터넷은 여전히 새로운 미래에 열려 있고, 인터넷의 개방성이 유지되는 한 웹은 다를 것이다.
사실 이러한 특성이, 지난 수 년 동안 인터넷 강자들이 독점적 플랫폼을 만드려는 것을 막아왔다. 구글, 페이스북은 과거의 전기, 수도, 철도와 같은 인프라가 ‘유틸리티’가 된 것 처럼 자신들의 서비스를 유틸리티화함으로써 인터넷 환경에서 자신들의 사업 안정성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전기, 수도, 철도와 IT 인프라가 같을 수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PC 기반 인터넷 생태계는 ‘이용자 활용력’에 따라 ‘그 응용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틸리티가 되더라도, 그것은 이용자를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고, 이용자를 배제할 수 없다면, 그 이용자들이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을 원하는 한,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웹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이란 수식어가 필요하다.
웹을 죽이는 방법은 있다. 웹의 지속적 혁신성을 지켜주고 있는 기본 아키텍처의 핵심들을 무너뜨리면 된다.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먼저 “모든 콘텐츠는 넷상에서 동일하다”는 ‘망중립성’의 원칙을 깨고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 영역의 강자가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업자들과 거래를 맺는 것이다. 망은 앞서 말한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독점 내지 과점 상태다. 미국은 AT&T와 버라이존으로 양분되어 있고, 한국은 KT다. 인터넷 기업이 진정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을 배제한 새로운 플랫폼을 원한다면 망 사업자와의 제휴가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들의 독점력을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구글이 버라이존과 추구한 모바일 웹에 망 중립성을 배제하려는 시도를 한 바가 있다. 유튜브 콘텐츠의 전송 우선권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그 복중의 계산으로 추측된다.
다음으로는 지금의 PC 단말기(end-point)가 기반이 된 웹 생태계를 모바일, 태블릿 단말기 기반 생태계 혹은 닫힌(lock-in) 단말기 생태계로 대체하면 된다. 애플의 iOS 진영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이 맞서고 있는 스마트폰 전쟁의 불이 꺼지지 않고,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고가 종이책을 추월하고, 139달러짜리 보급형 킨들을 발표하고, 아이패드가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이 지속되면 이 ‘대체의 미래’는 멀지 않은 내일일 것이다. 이것은 IT 인프라가 전기, 수도, 철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할 뿐, 그것을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자유를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플랫폼 안에서도 어느 정도 창조가 이루어질 수는 있으나, 적어도 온라인 상에서는 해당 플랫폼 제공자의 ‘허락’에 따른 ‘제한된 혁신’일 뿐이다.
따라서 웹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앤더슨의 주장은 도발적이었지만, 놓친 것이 많았다. 그는 웹의 이용 비중이 감소하는 것은 제대로 짚었지만, 그 절대적 이용량은 증가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비디오 이용량 증대가 IT와 미디어, 문화산업을 융합하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은 바로 봤지만, 플랫폼 구축을 통한 콘텐츠 소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기반한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의 수직 통합은 구속력이 약하다는 점을 놓쳤다. 나아가 여전히 ‘열린 창조성’(generativity)이라는 일반적 목적을 위한 단말기인 PC가 웹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있는 한 웹의 기반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무시했다.
그러나 ‘아직’일 뿐이다. 망 중립성의 원칙을 위반한 콘텐츠 제공 업체와 망 제공 업체의 결탁은, 새로운 기업이 인터넷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높이고 있다. 모바일, 태블릿의 대량 공급과 시장 확대에 의해서 PC 중심 웹 생태계가 닫힌 단말기에 기초한 웹 생태계로 변화하고 있고 IT 인프라는 전기, 수도 등의 인프라와 유사해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 인터넷 네트워크의 ‘망 중립성’, 인터넷 단말기의 ‘열린 창조성’(generativity) 등 오늘날 개방적이고 평등한 웹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과 질서를 간과한다면 웹 죽이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는 ‘웹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월드 와이드 웹(WWW)이라는 것은 1990년대에 당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재직하던 팀 버너스 리 경이 인터넷상 문서 공유의 편리를 위해 만든 어플리케이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웹은 ‘망 중립성’과 ‘열린 창조성’의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PC라는 단말기를 통했기 때문에 팀 버너스 리는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허락없이’ 제조할 수 있었다. 또 그 ‘웹’ 자체가 문서의 편집과 공유를 통한 재창조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20년 만에 전세계로 확산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열린 창조성’ 원칙의 힘이다.
나아가 인터넷의 모든 콘텐츠는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는 ‘망 중립성’ 원칙이 웹에 그대로 적용이 되었기 때문에, 웹은 창조와 혁신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쟁이 평등한’ 플랫폼이 될 수 있었다. 그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구글, 페이스북 등의 신흥 강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앱이 웹을 죽인다면, 새로운 ‘소비’ 콘텐츠 플랫폼이 웹을 죽인다면, 그 것은 ‘웹의 종말’일 뿐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지속되어 왔던 ‘개방에 의한 혁신’과 ‘공유에 의한 창조’에 일퇴가 가해지는 것이다. 그들이 바꾸는 것은 웹 이후 새로운 플랫폼일 뿐 아니라, 웹을 통해 부상한 ‘창조의 패러다임’이 ‘소비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웹이 죽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것은 웹이 죽은 후, 또 다른 웹이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애초에 막으려는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 창조성과 망 중립성이 사라진 곳에는, 더 많은 소비를 위한 플랫폼만이 잔존할 뿐이다. 더 많은 개인 정보가 수집되고, 광고 등 상업적 목적을 위해 활용될 뿐이다. 사실, 이 것이 로렌스 레식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코드와 다른 사이버 공간의 법들>(Code and the Other Laws of Cyberspace)에서 지적한 인터넷의 미래였다. 인터넷은 무한한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자유는 ‘코드’라는 ‘아키텍쳐’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으므로, 인터넷을 상업화하려는 세력이 그 ‘코드’를 변경할 경우, 자유는 충분히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이다. 그 같은 ‘자유’는 ‘공기’와 같아서 막상 있을 때는 그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웹의 ‘자유’를 너무 당연히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것이 ‘소비’와 ‘편리’의 이름으로 감소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가 사라진 후에도, ‘자유’가 극히 감소한 후에도,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따라서 다시 논의의 핵심은 ‘웹의 죽음’이 아니다. 웹이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탄생과 소멸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또다른 웹’이 태어날 생태계가 지금의 환경이냐는 것이다.
아직 웹이 죽지 않았을 때, 인터넷의 개방성이 그 명맥을 유지할 때인 지금이 나의 인터넷을, 웹을 지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